(서울=연합뉴스) 옥 철 기자 = 핌 베어벡 축구대표팀 감독이 처음 지휘한 한.일전은 그에겐 너무 잔인했다.
28일 밤(이하 한국시간) 아시안컵축구 3-4위전이 열린 인도네시아 팔렘방 자카바링 경기장.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베어벡 감독은 한국 축구의 '영원한 숙적' 일본을 맞아 혹독한 경험을 감내해야 했다.
팽팽한 전반 공방을 마치고 한국이 공세의 수위를 높여가던 후반 11분.
강민수(전남)이 다카하라 나오히로를 몸으로 막아선 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출신 알바드와위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전반에 이미 경고 한 장을 받은 강민수를 향해 달려간 주심은 옐로카드에 이어 다시 레드카드를 꺼내들었다.
경고 2회로 강민수에게 퇴장 명령이 내려졌다. 심판의 권한으로 파울을 불 수 있겠지만 고의적인 신체 접촉이 아닌 상황이라면 경고는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한국 벤치의 항의가 잇따랐다.
베어벡 감독은 테크니컬 지역을 벗어나 상대 벤치 쪽까지 뛰어가 부심에게 격렬히 항의했다.
홍명보 코치와 코사 골키퍼 코치까지 가세했다.
이를 본 알바드와위 주심은 가차없이 베어벡 감독에게 퇴장 명령을 내렸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홍명보 코치와 코사 코치까지 모두 그라운드 밖으로 쫓아내버렸다.
아시아축구연맹(AFC) 관계자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을 만큼 단호했고 지나친 판정이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올 수 없었다.
벤치에는 압신 고트비 코치 홀로 남았다. 게다가 베어벡호 태극전사들은 10명으로 줄었다. 이 때부터 처절한 사투가 시작됐다.
베어벡 감독은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던 순간이었다.
그는 홍 코치와 함께 관중석으로 올라갔다.
일본의 파상 공세가 이어졌고 세 경기 연속 연장 혈투로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태극전사들은 다리에 쥐가 나면서 하나 둘 쓰러졌다가 겨우겨우 다시 일어났다. 눈물 겨운 악전고투가 계속됐다.
베어벡 감독은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3연속 120분 사투도, 초유의 감독.코치 동반 퇴장 사태도 모두 처음있는 일이었지만 그럴수록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
무전기로 고트비 코치에게 끝까지 작전을 지시했다. 수적 열세에서 실점하지 않기 위해 중앙수비를 두텁게 짰다.
연장 후반에 들어가자 몇몇 태극전사들은 거의 걷기도 힘들 정도로 지쳤다.
베어벡 감독은 마지막 휘슬이 불릴 때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을 것을 끊임없이 주문했다.
그리고 맞이한 승부차기. 두 팀 다섯 명의 키커들이 모두 킥을 성공시킬 때까지 베어벡 감독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6번 키커 김치우의 킥이 들어가고 이운재가 일본 6번 키커 하뉴의 킥을 막아낸 순간 베어벡 감독은 가까스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베어벡 감독은 말 그대로 천당과 지옥을 수없이 오갔다.
우승컵은 아니었지만 한국 축구는 귀중한 아시아 3위 자리와 다음 대회 본선 출전권을 따낼 수 있었다.
oakchu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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